그 아이의 사정

돌이켜 생각해 보면, 나의 유년 시절에
학급에서 도난 사건이라도 일어나면
우리는 늘 책상 위에 올라가 무릎을 뚫고 눈을 감은 후
‘범인이 나올 때 까지’ 무시무시한 선생님의 매를, 꾸중을 들어야만 했다.

무슨 위에서 내려온 지침 비슷한 교본이 있었을 것 같지도 않은데,
왜 우리는 늘 학창 시절에 그렇게 ‘복종’ 해야만 했을까.

설마 그런 과정 속에서

범인인 아이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하길
선생님들은 순진하게 바란 것 일까.

체벌의 시간이 지날수록,

범인인 아이가 어서 자백하길 기도하는게 아니라

우린 ‘그 누군가 범인인 나 아닌 녀석’을 향해
모진 욕지거리를 날리며

나 이외의 친구들을 ‘잠재적 범죄자’ 취급하여
스스로 도덕적인 안식을 취했었던 것 같다.

도둑질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,
그게 어렸던 우릴 서로 불신하게 만들 만큼 중요한 문제 였을까.

아마도 남의 물건에 손을 댄 그 아이에게도
‘어찌어찌 하다보니’ 너무 시간이 지나가 버린

그렇고 그런 사정이라는게 있진 않았을까.

정말 선생님이 우리에게, 그 아이에게 ‘교화’라는 걸 하고 싶었다면

조금 다른 방식을 고민해 봐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.

요즘의 교정은 어떤 방식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.

아니, 많이 달라졌겠지.

 

황현산 선생님의 <밤이 선생이다> 한 대목을 읽다가. 문득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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